HOME > 수출지원정보 > 해외진출성공사례 인쇄
대만서 건너가 ‘본토신화’…쌀과자재벌 왕왕그룹 스크랩 |
---|
진흥원 | 2012.07.13 |
조회 : 3,154
|
|
토속종교 ‘바이바이’활용 수요 일으키며 두각
1992년 후난성 진출, 지난해 매출 29억 달러 미국 포브스가 발표한 2012년 대만 최고 부호 순위에서 식품기업인 왕왕의 차이옌밍 회장이 처음으로 1위에 올라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차이 회장의 1위 등극 비결은 성공적인 중국 진출에 있는데 왕왕그룹은 2011년 29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차이 회장의 순자산 가치 또한 61억 달러에서 80억 달러로 급상승했다. 중국 대륙에 쌀과자를 팔아 거부가 된 차이 회장과 왕왕그룹의 성공 스토리를 타이베이 무역관이 알려왔다. □ 쌀과자 회사로 출발하다=왕왕그룹은 1962년 대만에서 설립된 이란식품기업이 모태이며 새로운 제품과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1983년 일본 3대 쌀과자 업체 중 하나인 이와츠카와의 협력해 왕왕센베라는 쌀과자를 출시했다. 왕왕센베는 곧바로 엄청난 인기를 끌며 대만에서 한때 시장 점유율이 95%에 육박하기도 했는데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친 것도 있지만 대만의 문화를 잘 반영한 ‘왕왕’이라는 기가 막힌 브랜드 네이밍 또한 성공의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
왕왕그룹은 듣기 좋고 부르기 좋고 길한 ‘왕왕’이란 이름으로 단번에 지명도를 끌어올리며 대만 식품분야의 강자 통이와 이메이에 대적할 만한 식품업체로 커나갔다. 현재 왕왕그룹은 식품뿐만 아니라 병원, 레스토랑 체인, 호텔, 언론, 방송 등을 보유한 거대 그룹으로 성장했다. □ 대만의 특수 문화, ‘바이바이’=대만에는 '바이바이'라는 도교와 불교가 혼합된 토속적인 종교문화가 있는데 대만인들이 가정의 안정과 사업의 번창을 위해 향을 피우고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모습도 여기서 유래한다. 그런데 바이바이를 할 때는 과자 등 간단한 음식을 준비하는데 왕왕센베의 ‘왕’ 자는 사업의 번창, 흥성을 나타내는 길한 글자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좋은 의미를 가진 왕왕센베를 구입하게 된다. □ 왕왕그룹의 중국 진출=왕왕그룹은 대만 제과업체로는 최초로 1989년 중국에 상표등록을 했고 1992년부터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1992년 차이옌밍 회장은 다른 외자기업처럼 중국 동부연안 지역 투자를 결심했다. 하지만 이 지역은 너무 많은 외자기업이 진출해 지방 정부의 특별한 혜택을 받을 수 없다고 보고 후난성 창샤에 투자했고 후난성 정부는 왕왕그룹을 돌봤다. 왕왕그룹이 후난성 최초의 대만 투자기업이었던 것이다. 왕왕이 후난성 투자를 결심한 것은 투자 혜택뿐만 아니라 원료 확보가 쉬워 원가를 낮출 수 있다는 장점도 작용했다. 왕왕센베가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자 200여 개가 넘는 유사품이 나타났으며 업체 간 출혈 경쟁이 시작돼 한때 80%에 달하던 시장 점유율이 50%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이에 차이옌밍 회장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왕왕’이란 브랜드 외에 전략적으로 ‘헤이피’ 등 4종의 서브 브랜드를 출시해 기존에 구축한 규모의 경제를 토대로 경쟁업체보다 더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유사품을 몰아냈다. 당시 왕왕은 경쟁력 확보를 위해 40% 이상 가격인하를 단행하는 과감성을 보였고 이는 나중에 대만 업체들이 중국 토종 기업과 경쟁할 때 회자되는 유명한 사례가 됐다. 한편 왕왕그룹은 가격경쟁에 만전을 기울이는 한편 기존의 지명도를 바탕으로 사탕, 과자, 유제품, 음료, 케이크 등을 생산하면서 상품의 다양화를 이루어 식품회사로서의 입지를 다져나갔다. 그런가 하면 왕왕그룹은 ‘유통망 경작’이란 전략을 내세워 중국의 농촌부터 도시에 이르기까지 촘촘한 유통망을 조성하고 각지에 공장을 설립해 쌀과자부터 유제품, 음료에 이르는 생산과 공급, 유통에 만전을 기했다. 또한 무조건 현금결제를 원칙으로 했고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의 반품을 조건 없이 받아들여 신용을 쌓았다. 이 결과 중국에서 왕왕그룹의 캔디와 과자류는 쌀과자와 함께 경쟁업체가 넘볼 수 없는 부동의 1위를 유지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