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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수기업, 수출과 사랑에 빠지다 ① 폴리시스 스크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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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원 | 2013.07.29 |
조회 : 27,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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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수기업이 수출기업으로 거듭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많은 내수기업이 초보 수출기업으로,
초보 수출기업이 중견 수출기업으로 성공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여기에는 중소기업청 같은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한국무역협회 같은
공공기관들이 큰 기여를 했다. 한국무역협회는 내수기업에서 수출기업으로 성공적으로 변신한 기업들의 사례를 널리 전파하기 위해 최근 ‘내수기업
수출기업화 성공사례 공모전’을 진행했다. 이 공모전에서 수상한 사례들을 시리즈로 게재한다.<편집자
주> 8인의 기적, 꿈은 이루어진다 (주)폴리시스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신생기업이다. 경상북도 경주의 작은 마을에 위치한 우리 회사는 건축용 폴리싱 그라인더를 생산하고 있다. 폴리시스는 한국 시장에서는 비교적 낯설지만 콘크리트 폴리싱 공법의 가능성을 믿었다. 그래서 자체기술로 콘크리트 폴리싱 장비 개발에 들어갔고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국산화에 성공했다. 그리고 얼마 전, 미국의 세계적인 건설 기계업체인 ‘BMI', 영국의 ’SPE International' 등과 독점 수출 계약을 맺는 쾌거를 올렸다. 8인의 직원이 이뤄낸, 작지만 강한 우리의 치열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새로운 성장동력 콘크리트 폴리싱
우리 회사는 원래 1998년 창립해 국내의 자동차 제조사에 범퍼용 부품을 납품하던 2차
공급업체였다. 젊은 나이에 회사를 운영하던 나(배형성 대표)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하루하루에 지쳐 있었다. 매출규모는 크지 않았고,
2차 공급업체라는 한계를 절감하고 있었다. 변화 없이 반복되는 경영의 연속. 매너리즘에 빠졌다. 이러면 안 되겠다 싶었다. 나, 직원, 우리
회사가 발전할 수 있는 성장 동력을 제공할 ‘무엇’이 필요했다. 우리 회사의 브레인 역할을 하는 개발팀장과 함께 머리를 맞댔다. 향후 우리
회사의 성장 동력은 무엇일까? 우리의 먹을거리가 될 새로운 기술은 어떤 것이 있을까? 고민을 거듭하던 시간이 흘러갔다. 2007년 지인의 부탁으로 콘크리트 폴리싱 장비를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콘크리트 폴리싱이란 콘크리트 바닥 위에 에폭시나 우레탄 같은 화학 약품을 사용하지 않고 표면을 연마하여 바닥 자체를 마감재로 사용하는 공법이다. 기존에는 콘크리트 바닥면에 페인트나, 석재, 타일, 카펫 등으로 마감하는 방식을 사용해 화재 시 불이 잘 붙고 유독가스를 방출하는 등 여러 문제가 있었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이런 부정적인 효과를 제거한 친환경적인 마감 방식을 사용해왔는데, 당시 국내에서는 이 콘크리트 폴리싱이라는 개념이 낯설 뿐 아니라 고가(약4,000만원/대) 장비구입 비용 때문에 꺼리는 상황이었다. 이에 지인이 이 폴리싱 그라인더를 우리 회사에서 만들어 볼 것을 제의해 왔다. “까짓 거, 해 보지 뭐.” 그렇게 우리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됐다. “Yes! We can do it!” 이 말을 던져놓고 개발에 착수했다. 외국의 장비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없었기에 유튜브에 올라온 동영상을 활용했다. 기계에 대한 감각이 뛰어난 개발팀장은 영상을 보더니 작동원리를 포착했다. 결국 많은 시행착오 끝에 장비개발에 성공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사업성 심사에 들어갔다. 살펴보니 국내에서는 이 장비에 대한 수요가 불확실했다. 잘 알려지지도 않았고, 당장 만들어도 팔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 가장 많이 보급되어 있고 활성화되어 있는 북미, 유럽지역으로 눈을 돌렸다. 4~5년 내에는 자연스레 우리나라로도 유입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내수보다 수출이다!’ 첫 목표가 정해졌다. 내수보다 수출… 무역협회의 도움
생각보다 개발 속도는 더뎠다. 기계 자체만 만드는 데는 1년이면 충분했지만, 완전한 상품으로
시장에 내놓기엔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콘크리트 바닥을 연마할 때 생기는 여러 분진들이 문제였다. 수많은 분진들을 해결하기 위해 집진기를
만들었다. 또한 시공 중 끊임없이 쓰일 소모성 공구와 기계와의 호환성도 높여야 했다.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장고 끝에 내린 사업
다각화라는 결론, 그리고 무턱대고 뛰어든 낯선 분야. 매일같이 자금, 인력, 시간과 싸웠다. 긴 랠리에 직원들이 지쳐갔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스스로도 직원들에게도 되새겼다. 상투적이지만 그 말밖에 없었다. “불가능은 없다.” 갖은 고생 끝에 드디어 콘크리트 폴리싱 장비 시스템 구축에 성공했다. 개발에 착수한 지 3년만이다. 호기롭게 시작한 만큼 이제 됐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어떻게 외국에 팔지?’ 나 자신이 수출에 대해 완전히 무지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각지 못했던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모르면 배워야지.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 했다. 2008년 한국무역협회와 경북도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경북 무역아카데미’ 연수과정의 문을 두드렸다. 연수 참가를 계기로 한국무역협회의 다양한 지원 사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무역협회에서는 우리처럼 수출이 낯선 기업을 대상으로 여러 지원을 하고 있었다. 특히 Trade SOS 무역현장 자문위원은 직접 공장까지 찾아와 해외바이어를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계약을 하며 돈은 어떻게 받을 수 있는지까지 꼼꼼하고 섬세하게 일러주었다. 수출의 A to Z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교육과 자문을 받고 보니 이런 과정들이 국내시장을 대상으로 일할 때와는 무척 다르구나 싶었다. 무역협회에서는 해외전시회 개별참가지원을 통한 마케팅지원, 무역기금융자, 해외바이어 정보제공에 이르기까지 단비를 내려주었다. 오더를 받아서 주문생산을 할 때는 영업이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콘크리트 폴리싱 시장은 해외 영업이 필수적이었다. 무역협회를 통해 새로운 자극에 노출되고 보니 우리의 부족한 점이 보였다. 동시에 우리가 가야할 길이 선명해졌다. 무역을 담당할, 영어에 능통한 새 직원을 고용하고 우리 제품을 알리려 미국의 콘크리트 산업전시회에도 참가하기로 했다. 미지근한 바이어 반응 “It’s Good! But….”
2010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콘크리트 산업 전시회(World
Of Concrete 2010)에 처녀 참가하여 세계 무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때까지도 우리는 좋은 제품을 만들면 시장이 알아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젖어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폴리싱 그라인더를 본 바이어들의 반응은 예상을 벗어났다. “It's Good! But….” 찬사를
쏟아낼 것만 같던 그들의 입에서 부정적인 말들이 흘러나왔다. “AS는 어떻게 하나요, 어디에서 구입할 수 있죠? 미국 내 컨택 포인트가 있나요?” 정말 뭔가에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내수기업이었던 우리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좋은 제품을 만들면 의당 팔릴 것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푸른 눈의 바이어들은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인 코리아에서 온 폴리싱 그라인더를 쉽게 인정해 주지 않았다. 현지 판매처 구축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러나 그것조차 쉽지 않았다. 현지 대리점에서는 AS를 하지 않았기에 미국에서 AS망을 구축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완성기계를 외국에 판다는 것이 웬만한 도전이 아님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절망감이 밀려왔다. 절망에서 세계시장의 트렌드를 파악하다 임전무퇴(臨戰無退). 도망가지 않으리라. 방법을 찾기로 했다. 당시 경쟁사라 할 수 있는 콘크리트 폴리싱 제조사들의 제품을 살펴보니, 대부분 수동장비였다. 하지만 산업용 기계장비의 세계적인 트렌드를 생각해 봤을 때, 폴리싱 장비 또한 사람이 힘들게 작업해야 하는 수동 장비보다는 리모컨으로 조작할 수 있는 자동장비가 더 주효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자동장비를 생산하는 회사는 업계 1위를 차지하는 스웨덴 기업이 유일할 정도였다. 결국, 기존에 완성해놓은 수동장비를 포기하고 자동장비를 개발하기로 했다. 2007년 개발을 시작하여 3~4년의 시간을 거쳐 오는 동안 우리의 기술은 꽤 축적되어 있었다. 기술에 있어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1년이 채 안 되는 기간에 자동장비 개발을 완성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 기업에서 연락이 왔다. 첫 수출의 신호탄이었다. 짜릿했다. 그렇지만 거기에 만족할 수는 없었다. 지리적 인접성을 활용해 일본과는 수출길을 텄지만 태평양을 건너고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지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내수기업의 수출기업화는 판로개척이 관건이다. 우리 회사는 이 사실을 경험을 통해 체득할 수 있었다. 회사는 2012년 라스베이거스 콘크리트 박람회에 다시 참가하게 됐다. 승부수를 띄웠다. 많은 비용을 들여 야외부스를 크게 잡고 시연회(Demonstration)까지 열었다. 폭발적인 반응이었지만, 여전히 바이어들은 주저했다. 대신 대형현장에 알맞은 더 큰 장비를 원하는 바이어들의 니즈(Needs)는 읽어낼 수 있었다. 미국에서 돌아오자마자 다시 대형 장비개발에 착수했다. 결과적으로 난관은 우리를 성숙하게 했고, 기술적 발전도 이뤄낼 수 있었다. BMI사와의 첫 만남, 그리고 마지막 승부수
유관기관들의 전폭적인 지원도 포기할 수 없는 큰 이유이자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해외영업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을 위한 ‘지사화 사업’을 통해, 캐나다 현지 직원의 도움을 받아 BMI라는 회사와 접촉할 수 있었다. 또
2011년 시장개척단 참가를 통해 BMI와의 미팅을 주선 받았는데 별 성과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회사는 기존의 사업만으로도 충분히
성공적으로 성장해가고 있었기에, 굳이 새로운 콘크리트 폴리싱 분야까지 비즈니스 영역을 확장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2012년 전시회에서 1년 만에 다시 만난 BMI의 부스에는 떡하니 미국 브랜드의 폴리싱 그라인더가 놓여 있었다. ‘1년 전, 차가운 얼굴로 관심 없다고 말했던 그들이 어떻게….‘ 충격과 실망으로 점철된 BMI와의 인연은 그렇게 끝나는 듯 했다. 대형 장비개발이 끝나던 시점이었다. 경북도의 지원을 받아 코트라가 바이어를 초청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 회사를 담당하는 코트라 직원에게 다급하게 연락했다. “마지막입니다.” 결국 그렇게 BMI 바이어들을 초청할 수 있게 되었다. 마침 그들은 아시아 지역에 출장스케줄이 잡혀있던 차였다. 자연스레 그들은 귀국길에 한국을 방문하기로 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상담회 때 단순히 카탈로그를 보여주며 제품을 설명해줬을 때와는 다른 반응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두 눈으로 직접 자세히 살펴본 뒤, 그들은 우리 제품의 성능에 감탄했다. 다가오는 2013년 전시회를 통해 BMI의 부스에서 폴리시스의 제품을 평가받아 보자는 나의 제안 또한 흔쾌히 받아들였다. 비용 상의 문제로 2013년에는 라스베이거스의 전시회에 참가할 수 없을 것 같아 난감하던 차였는데, BMI의 도움을 얻어 폴리시스의 콘크리트 폴리싱 그라인더가 라스베이거스에서 선보일 수 있었다. 바이어들은 코리아의 폴리시스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긍정적인 반응에 힘입어 전시회의 마지막 날, BMI는 우리와 계약하겠다는 의사를 보였다. 꿈은 드디어 현실로 다가왔다. 3년간 1500만 달러 수출 계약 성공
2013년 4월에는 미국 시카고 지역에 그렇게 소망하던 거점 지사를 마련하기도 했다.
이번에도 폴리시스의 인복은 계속되었다. 상담회에서 만난 코트라 직원에게 미국 지사를 담당할 만한 인재를 요청했더니 본인이 도움을 주겠다고 했다.
마케팅 분야에 있어 10여년의 경력을 갖춘 베테랑인 그는 마침 이직을 준비하고 있었고, 우리와 인연이 닿게 된 것이다. 그는 BMI와의 계약을 성사시키는 조정자 역할을 했다. 3년간, 1000만 달러 계약. BMI의 담당자는 우리 폴리시스의 장비를 신뢰했고 5월 내내 미국 전역을 다니며 로드쇼를 열기도 했다. 이는 우리 회사의 기술력에 대한 신뢰이자 상호간의 관계에 대한 신뢰였다. 그들의 도움으로 4월 독일 뮌헨에서 열린 건설기계박람회(바우마, BAUMA2013)에서 영국회사 SPE International과의 독점 판매계약을 따낼 수 있었다. 3년간 500만 달러. 총 1,500만 달러에 달하는 계약이 이뤄졌다. 8인의 기적, 꿈이 아닌 이야기 2007년 개발을 시작하여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어내고 회사를 차리고 유럽/미국과 계약을 체결하기까지, 자동차부품에서 업종전환을 하여 국산 콘크리트 폴리싱 장비를 만들어내기까지, 우리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며 10여개에 달하는 특허를 등록했다. 단순히 선발주자를 벤치마킹하는 데서 그친 것이 아니라 차별화된 기술력으로 승부했기에 이런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아직 끝이 아니다. 여전히 수많은 도전에 봉착하곤 한다. 꾸준한 연구와 노력으로 계속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고, 인적투자를 더 체계화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글로벌 수요에 발맞춰 신입 직원의 채용과 시스템적 확장을 계획하고 있다. 수출에는 국경이 없다. 세계의 여러 전시회와 가까워져야 한다. 그럼으로써 비로소 트렌드를 파악하고 눈과 귀를 열 수 있다. 중소기업에게 해외수출이 어려운 이유는 마케팅 노하우의 부재에 있다. 우리 폴리시스의 사례처럼 수출 유관기관들의 도움을 받아 지혜롭게 난관을 헤쳐 나가면서, 동시에 자신만의 기술적 차별성을 꾀한다면 여타 다른 중소기업들도 충분히 성공적인 수출기업을 꾸릴 수 있을 것이다. 매순간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결국 방향성에 있다. 돈이라는 수단은 부수적인 것일 뿐이리라. 폴리시스의 목표는 수출확대를 통한 프라이드 제고에 있다. 국가대표의 타이틀을 넘어 세계 1등 기업이 되는 것. 수출기업에 있어서 외형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오직 시장에서 가치 있는 제품으로 인정받는 것만이 우리를 웃게 한다. 8인의 직원들이 만들어 낸 이 말도 안 되는 기적 같은 이야기가 대한민국 중소기업인들에게 자양분이 됨과 동시에 수출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우리는 오늘도 글로벌 강소기업 ㈜폴리시스의 그라인더가 세계시장에서 우뚝 설 날을 그리며 또 다른 기적을 꿈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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