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일보 김현호 기자] 세상의 모든 관계는 신뢰를 기반으로 다져지는 게 정석이다. 혈연관계도 그에 못지 않은 부부지간도 신뢰를 바탕으로 했을 때 깊고 튼튼하게 뿌리내려 집안이 융숭해진다. 가족을 넘어 사회도 마찬가지다. 신뢰에 근거한 사회가 건강한 것은 당연지사다. 자본주의의 근간인 경제 역시 신뢰가 적립됐을 때 제대로 작동된다.
어반스케이프 김복환(66) 대표의 경영철학 키워드가 신뢰다. 그는 신뢰를 앞세워 조경 분야에서 어반스케이프를 독보적인 기업으로 육성했다. 남을 너무 믿은 탓에 어려움도 있었지만 재기의 발판 역시 믿음이었다. 그에게 신뢰는 삶의 좌표다.
#. 우연찮게 접한 조경의 세계
김 대표가 처음부터 조경쪽에 관심을 둔 건 아니었다. 군 제대 후 먹고 살 일이 걱정이었던 그는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졌고 동네 어르신의 조언에 따라 조경에 입문했다. 인조목을 취급하는 서울 어느 곳이었다. 인조목은 시멘트 등을 사용해 인공적으로 나무의 형태와 질감을 살린 결을 만든 것이었는데 당시 조경계에선 상당히 고급기술이었다. 그러나 마땅한 기술이 없던 그에게 조경의 세계는 너무나 버거운 곳이었다. 일 자체도 녹록지 않은 데다 항상 부상의 위험을 안고 있다보니 입들이 바다 사나이들의 그것과 비교해도 거칠었다. 긴장을 늦추지 말라는 경고 메시지는 폐부를 찌르곤 했다.
“당시 인조목을 다루는 일은 나름 고급기술이었습니다. 현장에선 폭언이 난무했는데 돌아보면 일종의 통과의례, 즉 입사시험이었던 것 같아요. 일 배운다고 호기롭게 왔다가 냅다 도망가는 사람들이 많았을 정도였답니다. 저도 힘들기는 했지만 어떻게든 기술을 배우겠다는 오기가 생기더군요. 그렇게 버티고 버티며 사수 어깨 너머로 기술을 눈에 담고 숙소로 돌아와 계속 되뇌이고 되새겼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하나 둘 떠나 결국 또래 중 홀로 남은 그를 사수들이 인정하기 시작했고 기특했는지 자신들의 기술을 전수해주더란다. 악착같이 버틴 5개월 후 그는 그곳을 떠난다. 더 이상 배울 기술이 없다는 판단 아래에서였다. 그렇다고 곧바로 자신의 업체를 차린 것은 아니었다. 자금을 모으기 위해 대전 한 조경회사에 입사해 약 3년을 더 다졌다. 서울서 고초 끝에 배운 인조목 기술은 대전 회사에선 가히 놀라운 수준이었고 그래서 빠르게 자금을 모을 수 있었다. 은근과 끈기로 드디어 발판을 만들었고 1987년 어반스케이프의 전신인 한밭특수조경을 창업했다.
#. 신뢰 탓에 위기 … 신뢰 덕에 재기
인조목은 물론 주력 제품인 퍼걸러, 옥외용벤치, 디자인형울타리, 놀이시설물 등 다양한 조경시설물과 환경시설물을 다루는 한밭특수조경의 규모는 점차 커져갔다. 1997년 10월엔 본사를 오정동으로 옮겼다. 그렇게 IMF 외환위기 사태와 마주했다. 나라 망한다는 말이 실감날 만큼 경제가 걷잡을 수 없는 파국에 휘말렸던 그 암울한 시절 말이다.
그러나 한밭특수조경은 IMF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았다. 주로 민간 분야에서 영업했다가 공공기관 발주 공사로 빠르게 눈을 돌렸기 때문이다. 인조목을 비롯한 한밭특수조경만의 기술이 워낙 고급이었고 다른 조경장이들이 대충 눈으로 훔쳐 따라 하긴 했지만 원조를 뛰어넘을 순 없었다. 한밭특수조경은 공공기관의 눈에 쉽게 들었다. 국난 수준이었다고는 하나 공공기관 특성상 결제도 ‘칼’ 같았다. 과거 민간분야에서와 달리 자금이 한 곳에 묶여 있는 경우도 없었고 공사를 하나 끝내면 곧바로 다른 공사에 착수할 수 있었다. 그렇게 IMF 사태 때 김 대표의 한밭특수조경은 성장 발판을 마련했다. 그러나 위기는 전혀 예상치 못 한 곳에서 발생했다.
2004년 한밭특수조경은 서울의 한 주상복합 건설공사에 하청업체로 참여했다. 평소 같으면 계약금, 잔금 등으로 결제를 나눠 공사를 진행했으나 김 대표는 건설사의 어음을 믿고 무작정 착공했다. 그때까지 신뢰를 통해 경영했기에 문제 없을 것이라는 믿음에서였다.
“지금이야 어음은 보기 힘들지만 당시 공사현장에선 상당히 흔한 것이었어요. 어음을 믿고 착공해 무사히 완공했죠. 그런데 돌연 원청 건설사가 부도나 버리더라고요. 공사 규모가 5억 원이고 어음 역시 같은 금액이었는데 받을 데가 사라지니 청천벽력이더군요. 5억 원은 크나큰 타격이었습니다. 어떻게든 돈을 받으려고 소송을 했지요.”
판결까진 너무 쓰고 긴 시간이었다. 소송을 위해 법원에 자주 들락거렸고 회사 경영에 신경쓸 여유가 없었다. 5억 원의 손실로 긴축재정이 필요했던 건 말할 것도 없었다. 아내 한재순(63) 씨가 자금관리를 시작한 것이 이 때였다. 인고의 세월이 흘러 김 대표는 결국 소송을 통해 5억 원을 받을 수 있었고 다시 경영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아내 한 대표는 단순한 자금관리를 넘어 김 대표가 조경에 집중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 지원했다. 한 대표의 내조 덕분이었을까. 그는 온전히 일에 집중할 수 있었고 신뢰의 아이콘이 착실히 재기할 수 있는 기회는 계속 찾아왔다. 그리고 김 대표는 뒤에서 묵묵히 자신을 지원해 준 한 대표를 공식 대표로 한 어반스케이프로 사명을 변경했다. 신뢰 때문에 큰 손해를 보고 신뢰 덕분에 보기 좋게 재기한 순간이다.
#. “신뢰만이 답입니다”
어반스케이프는 이후 다양한 특허 등을 획득하며 조경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한 대표의 경영과 김 대표의 기술은 찰떡궁합, 금상첨화였다. 2016년부터 매년 본사가 있는 대전과 인근 세종, 충남은 물론 서울과 경기 등에서 다수의 우수공공디자인 제품 인증을 받았다. 공공기관에서 어반스케이프의 기술은 최고로 평가받아 수주도 꾸준했다. 이젠 조경계에선 전국구 네이밍을 갖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기후변화에 따른 미세먼지, 폭염에 대응하기 위한 기술 개발에 들어가는 등 성장판을 늘리고 있다.
“다양하기만한 조경시설물 제품에 만족하지 않고 이 분야를 선도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작업이 계속 되고 있죠. 우리를 향해 보내주는 신뢰에 보답하기 위해 절대 현재에 만족하지 않으려고요. 이 신뢰가 결국 어반스케이프의 성장 동력입니다.”
개인주의가 만연해 정이 점차 사라지며 삭막해지는 세상이지만 우리는 항상 누군가와 신뢰의 관계를 맺는다. 그 신뢰가 사라지지 않는 한 어반스케이프의 성장은 절대 멈추지 않는다. 우리도 그들처럼 살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