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일보 곽진성 기자] 초정밀가공 전문 분야는 첨단 기술과 고도로 축척된 노하우가 필요한 가공분야의 ‘꽃’으로 비유된다. 상당한 자본력과 인력을 갖춘 기업에 적합한 산업이라는 상식도 뒤따른다. 이 같은 상식을 거슬러 초정밀가공분야에서 의미 있는 물결을 저어나가는 기업이 있다.
‘윤슬㈜’이다. 푼돈을 모아 시작한 젊은 창업자들의 열정을 머금은 회사는 불과 13년 만에 초정밀가공 분야에서 토털솔루션을 제공하는 대전의 유망중소기업으로 우뚝 섰다. 그 비결을 신상교(44) 대표이사로부터 들어봤다.
#. 왜 사업 하느냐는 반대 “열정 막을 순 없었죠”
회사의 탄생에는 저마다의 비화(秘話)가 숨겨져 있기 마련이다. 윤슬㈜의 설립 과정도 그랬다. 거창한 무엇은 아니지만, 우리네 삶에 자극을 줄 수 있는 이야기를 머금고 있다.
지금은 한 회사의 대표이사 직함을 갖고 있는 신 대표, 그도 과거에는 한 연구원에서 기능직으로 일한 평범한 직장인이자 아내와 아이들을 둔 30대 가장이었다. 현실과 위치를 고려할 때 보통 사람들이라면 모험적인 일에 머뭇거리는 게 인지상정이지만 그는 달랐다.
남다른 마음을 먹고 ‘초정밀가공 분야 회사를 설립하겠다’는 인생 목표를 세워 실행에 옮겼다. 야심찬 사업계획을 가족에게 솔직히 전했단다.
“회사를 설립한다고 했을 때 반응요? 허허. 잘 다니는 직장을 그만두고, 왜 사업을 하냐며 반대가 만만찮았죠. 특히 아내는 ‘당신의 내성적인 성격에 사업을 하긴 쉽지 않다’고 뜯어 말렸습니다.”
신 대표 입장에선 걱정 가득한 가족의 반응이 못내 서운할 법도 했지만, ‘내성적인 면이 있고 부양가족도 있기에 반대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아내의 반응을 이해하면서도, 가슴 깊숙한 곳에선 여전히 ‘꿈을 이뤄보겠다’는 의지가 용솟음쳤다. 용기내 도전에 나선 이유다.
그는 마음이 맞은 친구 두 사람과 각각 30만 원 씩을 모으는 방식으로 회사를 설립했다. 설립금이 적었던 만큼 매일 매일이 난관이었지만, 그들은 발품을 팔며 신뢰를 바탕으로 부족한 자본을 메워나갔다.
“처음에는 결제할 돈조차 부족했습니다. 고객에게 양해를 구해 결제를 뒤로 미루는 승낙을 받은 후, 일을 해나갔습니다. 그렇게 몇 달 영업을 하니 정상적으로 결제를 할 만큼 돈을 모으게 됐습니다.”
청년들의 열정을 머금은 기업은 빠르게 성장했다. 윤슬은 지난 2007년 설립 후 3년 만에 벤처기업 인증을 받았다. 지난 2012년에는 윤슬에서 현 윤슬㈜로 법인을 전환했고 공장 등록도 마쳤다. 그 해 레이저 빔 덤프 특허 등록부터 3년간 특허등록이 이어졌다. 지난 2016년에는 기술 기관이전 성과도 냈다.
또 연구하는 기업이라는 수준을 인정받으며 지난 2018년 연구산업발전 기여공로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을 수여하기에 이른다. 나아가 지난해에는 대전시 유망중소기업으로 인증받았고 올해는 고도산화공정 등에 대해 신기술 인증을 획득해냈다. 말 그대로 괄목상대다.
#. ‘위기가 기회’, 윤슬㈜을 키우다
13년 만에 굵직한 성과들을 낸 윤슬㈜. 신 대표는 그 비결로 설계에서부터 가공·제작 조립, 시스템까지 원스톱 처리를 손꼽는다. 국책 연구원과 거래하며 전 공정에 대한 인력과 장비의 필요성을 느꼈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는 점은 선견지명이라 할 만하다.
“기회가 될 때마다 장비 구입 및 인력 충원에 힘썼습니다. 또 저희는 높은 품질의 제품과 빠른 납기로 경쟁 업체들보다 우위를 선점 했죠. 무엇보다 ‘고객사에서 저희하고 소통하면 연구 활동에 필요한 실험 장비를 제작하는 어려움이 없습니다. ”
물론 발전과정에서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 신 대표는 ‘인력’과 ‘자금문제’를 짚었다. 그의 고민은 다른 중소기업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문제해결을 위한 열쇠를 찾아 낸다는 점이 위기관리 능력으로 다가왔다. 인력·연봉 문제는 소통으로, 자금문제는 정부지원사업으로 풀어가는 식이다.
“대덕연구단지 국책 연구원들과 거래하며 정부 인증 및 특허 등을 취득, 이를 활용해 정부 지원사업으로 도움을 받은 적도 있고, 실질적으로 윤슬㈜의 제품을 만드는데 적용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전문 인력 찾기와 연봉 협상도 어려운 문제였지만 그럴 때마다 ‘위기가 기회’라는 생각으로 직원들과 진솔하게 소통하며 윤슬㈜의 미래에 대해 얘기해 줬습니다.”
소통하는 기업에는 여러 고객들이 함께한다. 현재 윤슬㈜ 고객사는 대덕연구단지 국책 연구원들이 다수를 이룬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국가핵융합연구소, 한국천문연구원, 한국원자력연구원, 기초과학연구원 등이 대표적이며 그 외 대전 및 서울의 유수 대학은 물론 광학계 관련 두 곳의 업체와도 양산제품에 대한 시험 제품을 테스트 중에 있다.
“기업 부설 연구소를 통해 연구 현장의 애로점을 항상 듣고 있습니다. 개선할 수 있는 방안들을 고민하다보니 좋은 제품이 나오고 기술력을 인정받은 것 같습니다.”
#. “세상 은은히 비춰 감동주는 기업 될 것”
오늘 세계는 여태껏 겪어보지 못한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전 세계에 몰아친 코로나19 여파다. 글로벌 회사도 견디기 쉽지 않은 높은 파고를 맞은 중소기업의 상황은 엄혹하다. 윤슬㈜ 역시 마찬가지지만 두려움이 아닌, 철저한 준비를 통해 도약의 기회로 삼으려 하고 있다.
“전 세계적인 불황 상황에서 저희처럼 작은 규모의 회사는 내부 품질 개선 및 공정 개선, 원가 절감에 대한 방안들을 모색해 이후 상황에 대비해야 합니다. 직원들과의 소통으로 현 상환 인식과 각자 위치에서 할 일을 잘하고자 버텨보자라는 의지를 가져봅니다"
동고동락한 동료들은 회사를 지탱해 나가는 든든한 동력이다. 긴 시간 같은 꿈을 향해 달려 온 복민갑 이사와 전종수 연구소장이 바로 그들이다. 신 대표는 “항상 옆에서 힘이 돼 주는 복 이사와 전 연구소장 있어 고민을 얘기하고 나누며 견뎌냈던 것 같습니다”라고 고마움을 표했다.
신 대표는 기업가로서, 그리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목표를 말한다. 삶에서는 소박한 행복, 사회적으로는 무리 없는 경영을 성공한 삶의 기준으로 삼는 그는, 그 목표를 놓치지 않기 위해 오늘도 달려나가고 있다. 윤슬이란 기업명에 세상을 은은하게 비춰 감동을 주는 기업이 되고자 하는 염원을 담았다는 초심을 간직한 채 말이다.
“가정적으로 행복의 기준은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 본인의 위치를 잘 잡고 생활해 나가는 것이며 노년에 부부가 자연에서 평온한 생활을 하는 겁니다. 사회적인 행복이라면 회사운영이 무리 없이 흘러가는 것이죠. 저와 사업 파트너 모두 우리가 육십 중반이 되면 전문 경영인을 내세우자라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욕심 없이 우리 보다 더 잘 해나갈 수 있는 인재에게 인계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말미 신 대표는 13년 간 사업가로서의 삶을 톺아보며 한 가지 조언을 전한다. 절제된 언행이다. “업무적인 자리나 개인적인 자리에서 상대방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말의 위험성 또한 잘 알기에 입에서 입으로 옮겨지는 말에 조심하고 경계해 왔습니다. ‘말은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지만 천 사람의 귀로 들어간다. 그리고 끝내 만 사람의 입으로 옯겨진다’는 한 책의 구절처럼,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위하는 자세로 산다면 자신도 존중 받으며 성공적인 삶을 살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