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에는 상황버섯이 제일이야." "자궁암과 여성질환에는 뽕나무 잎과 열매가 특효다." "눈에는 결명자가 좋아. 그러니 공부하는 애들에게는 결명자차를 물대신 마시게 하거라." "피로회복이 안된다고? 간이 안좋은 거 아냐? 미나리를 먹어. 꾸준히 먹으면 바로 좋아질 거야."
누구나 살면서 한두번은 들어봤음직한 말들이다. 암에는 항암제가 있고, 시력과 간기능개선을 위한 보조의약품도 다수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연환경에서 얻을 수 있는 천연물을 활용한 치료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끊이지 않는다.
우리는 이것을 소위 '민간요법'이라고 부른다. 물론 민간요법 모두가 근거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정말 효과가 있는 것인지, 왜 그런지 등에 대한 궁금증은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다.
▲ 유전자동의보감사업단에 참여하고 있는 KAIST 바이오정보시스템연구실 연구원들. <사진=최동진 기자>
이런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나선 이들이 있다. 유전자동의보감사업단(단장 이도헌 KAIST 교수)에 참여하고 있는 KAIST 바이오정보시스템연구실 연구원들이다.
엄밀히 말하면 연구팀의 목표는 천연물들에 포함된 성분들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를 복합적으로 파악해, 효율적인 천연물 기반 신약 개발 방법을 구축하는 것이다.
"상황버섯이 암에 효과가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인삼의 사포닌이 건강에 좋다는 것 역시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입니다. 하지만 상황버섯의 무슨 성분이 어느 기관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아요. 하나의 천연물이 아닌 여러 천연물의 다양한 성분들이 섞인 것은 더더욱 몰라요. 이 과정을 밝혀보자는 시도입니다."
연구실을 이끌고 있는 이도헌 교수의 연구과제에 대한 설명이다. '천연물 복합약리학'이라고 표현하면 단순 명료하다. 하지만 이 단순한 목표를 달성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많은 천연물, 그리고 그 안에 담겨진 더 많은 성분이 인체의 세포단위부터 기관과 몸 전체에 끼치는 영향을 하나씩, 그리고 복합적으로 밝혀내야 하기 때문이다. 경우의 수도 무수히 많을 뿐더러, 모두 실험을 통해 입증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 교수는 "이 문제는 국내 바이오 분야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한 많은 연구원들이 2007년부터 논의하면서 나온 아이디어를 결집한 것"이라고 소개하고 "실제 실험으로는 분명 불가능한 연구다. 그래서 컴퓨터를 이용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최종적으로 가상인체모델 시스템을 구축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 유전자동의보감사업단에 참여하고 있는 KAIST 바이오정보시스템연구실 이도헌 교수. <사진=최동진 기자>
◆"백지가 아니다…인류·과학 분야 거인의 어깨가 있다"
연구는 10년간 총 3단계로 나눠 진행된다. 1단계에서는 천연물 성분과 효능을 분석해 데이터베이스화 하는 것과 함께 가상인체모델 시스템 설계를 진행하고, 2단계에서는 알러지 등 질병특이적 인체모델을 연구해 관련 시스템을 구성한다. 3단계는 유전자동의보감사업단에 포함된 다른 21개 연구팀의 연구성과와 결합해 최종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황우창 박사과정 연구원은 "연구팀이 추구하는 신체 조직과 기관단위, 인체 전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종합적 자료가 필요한데 기존 자료를 찾아보면 대부분이 천연물 성분과 세포 단위 연구에 머물렀다"고 밝혔다.
이도헌 교수는 이와 관련해 "기꺼이 거인의 어깨를 빌리겠다"고 말했다. 이미 인류가 구축한 지식과 정보는 상당하다. 다만 많은 정보가 각 연구 분야와 목적에 따라 따로따로 존재하는 만큼, 이를 집대성해 활용하겠다는 복안이다.
여기에 활용되는 논문은 분자생물학, 화학, 의학, 약학 등의 분야 2000만건에 달한다. 이미 많은 연구를 통해 밝혀진 생리현상관계 생화학 반응식 약 200만개도 살펴야 한다.
한국은 물론 중국, 일본, 미국, 유럽 등에 산재해 있는 만큼 각기 다른 소스를 추출해 하나로 묶는 것이 중요하다. 때문에 이 연구실은 직접 실험보다는 컴퓨터를 이용한 코딩과 데이터화에 집중하고 있다.
이세준 선임연구원은 "큰 스케일의 모델을 처음 시도하는 일이다. 초기 설계단계부터 시행착오가 많았다"면서도 "이미 컴퓨터 언어인 BSML(바이오시너지모델링랭귀지)을 개발했다. 각종 문헌에서 정보를 추출해 BSML 형태로 저장하면, 향후 가상인체모델에서 생명현상을 표현하는데 활용된다"고 설명했다.
이미 천연물 성분과 효능과 관련해 2만건 이상의 처방을 데이터화했다. 허브와 콤파운드는 더 많다. 처방이 우리가 먹는 한약이나 약에 해당한다면, 허브는 인삼이나 당귀·감초 같은 한약재다. 콤파운드는 인삼에 포함된 사포닌 같은 화합물이다.
▲ 유전자동의보감사업단에 참여하고 있는 KAIST 바이오정보시스템연구실이 천연물질의 체내 반응을 시뮬레이션하기 위해 개발한 프로그램. 인간 DNA 단위의 상호작용을 통해 천연물의 효능을 시뮬레이션한다. <사진=KAIST 바이오정보시스템연구실>
◆"빠르고 효과적인 천연물 신약 개발…삶의 질 높일 것"
전체 시스템 개발을 위한 일부 요소기술도 개발된 상태다. ▲임상 정보를 조합적으로 고려해 구축한 질병 네트워크 ▲문헌기반 상황 특이적 관계추론 기법 ▲난소암 예후 예측기법 등이 그것이다.
이도헌 교수는 "비만을 비롯해 암과 당뇨, 고혈압 같은 현대인들이 겪는 질병은 복합적이다. 때문에 복합치료제가 필요한데 천연물은 자체가 복합물이고 오랜 역사와 경험을 통해 자료가 축적됐다"면서 "천연물 신약을 빠르고 정확하게 만들 수 있는 천연물복합약리학을 정립해 현대 인류의 삶을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더불어 유전자동의보감사업단의 중추 연구실로 다른 연구팀들과의 융합을 비롯해 의학계·한의학계·약학계와의 소통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교수는 "생물학과 생리학, 약학, 의학, 화학 등이 총망라된 융합프로젝트"라며 "균형잡힌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한 데 컴퓨터 기반 종합시스템을 다루는 쪽이 적합하지 않나 싶다. 그래서 사업단장을 맡긴 것으로 이해하고 각 연구실 성과가 제대로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이끌겠다"고 다짐했다.
▲ 유전자동의보감사업단에 참여하고 있는 KAIST 바이오정보시스템연구실 연구원들이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확인하고 있다. <사진=최동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