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넘기고, 지난해 강소기업 선정
청년들, 멘토 찾기 게을리 말길
[금강일보 곽진성 기자] 글로벌 강자가 즐비한 적자생존의 환경 속에 단 하나의 기술을 무기로 경쟁에 뛰어든다는 것은 웬만한 용기를 지니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용맹하다고 적진을 뚫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에 대한 분명한 믿음과 개발 기술에 대한 단단한 신뢰가 바탕이 됐음은 두말할 나위 없을 터. ‘한 우물을 파라’는 자신의 신조처럼, 센서 분야에서 끊임없는 발전을 이룬 남용현(57) TRUWIN(트루윈) 대표. 그의 이야기는 사업을 꿈꾸는 이들의 이목을 모으기 충분해 보인다. 전해주는 이야기 마디마디가 자본과 마케팅 능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선명히 보여준다는 점에서다.
#. 외국자동차 기업을 놀라게 하다
남 대표가 2006년 센서 개발업체 트루윈을 설립하게 된 일화는 어느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그는 ‘친구가 일하는 외국 자동차 회사의 문제를 잘 해결해 줬고 이를 계기로 그 회사의 도움을 받아 회사를 창립하게 됐다’는 당시의 이야기를 막힘없이 풀어낸다.
“하루는 외국기업인 A 자동차 연구원으로 일하던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그 시기 A사는 센서 문제로 곤란을 겪고 있었죠. ‘네가 전문가니 도움을 달라’는 친구의 부탁에, 현지로 나가 문제를 살펴보게 됐습니다. 제가 보기에 두 달 정도의 시간과 20만 불의 비용만 들이면 해결될 수 있을 것처럼 보여 이런 견해를 A사에 전달했죠.”
그런데 같은 문제를 살펴 본 또 다른 외국회사는 A사에 무려 1년이 넘는 시간과 수백 만 불의 비용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단다. 남 대표는 자신이 제시한 시간과 비용이면 해결할 수 있다고 했고 A사는 남 대표에게 일을 맡겼다. A사로서는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인 남 대표의 의견에 기대를 건 것인데 결과는 해피엔딩이었다.
“문제를 일주일 만에 해결해서 관련 내용을 전달했어요. 이 일을 계기로 A사에서 미국에 회사를 만들어 줄 테니 제품을 만들어 달라는 제안을 하더군요. 전 한국에서 기업을 설립하겠다는 뜻을 전했어요. 그 결과가 바로 트루윈입니다.”
이런 배경을 머금고 2006년 대전에 설립된 트루윈은 이후 페달 및 브레이크 등의 센서 등을 제조, 완성차 및 자동차 부품업체에 공급하는 기업으로 발전해 나갔다. 남 대표를 주축으로 글로벌 자동차 그룹이 인정한 기술력을 보유한 트루윈은 탄탄대로를 걸었다. 독보적인 원천기술로 1년여 만에 300만 불 수출의 탑을 수상하기도 했다.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엑셀, 브레이크 등에 적용되는 센서를 국산화하는데 성공했다 점도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 위기 넘어, 대한민국 강소기업으로
회사 설립 후 순항하던 트루윈에게도 위기의 순간은 찾아왔다. 2008년 외환위기 당시 트루윈과 거래하던 A사의 경영 악화가 심각해져 받아야 할 돈을 받지 못한 것. 또 2014년 이후 중국 투자가 성과를 보지 못한 것 역시 타격이었다. 손실액이 적잖았고 해결도 녹록지 않았다. 그러나 그에겐 특유의 뚝심과 직원, 그리고 대전 경제계의 두터운 신뢰가 있었다.
“직원들의 걱정이 클 법 했죠. 직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월급날을 맞추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면 그날로 회사를 문을 닫겠다’고 말하기도 했죠. 믿고 따라준 직원들이 지금 생각해도 고맙습니다. 또 은행에서 돈을 빌려주지 않을 때 대전의 어른들이 믿고 자금을 빌려줬습니다. 저에 대한 신뢰라 생각하고 늘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당시의 위기를 거치며 남 대표는 벤처기업의 현실과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장고한 듯 하다. “벤처기업은 자본력도, 마케팅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결국 기술의 완성도가 생명”이라는 그의 지론은 경험으로 연마된 결과물로 들린다.
“영업력 좋은 회사는 기술력이 70~80%만 돼도 됩니다. 돈이 많은 회사들도 비슷해요. 반면 벤처기업은 시장요구 기술의 150%는 돼야지만 먹고 살 수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꾸준히 돈을 버는 사업이 창업할 당시 만든 제품입니다. 그만큼 원천기술이 중요합니다.”
트루윈에게는 설립 때부터 다져온 기술력이 있었다. 그 독보적 기술력을 바탕으로 2006년 접촉식 센서사업에 나섰던 트루윈은 밑천을 더욱 키워나갔다. 5년 후인 2011년 비접촉센서사업, 2018년 적외선카메라압력센서, 지난해 먼지센서히터, 올해 EPS핸들센서까지 다양한 센서 개발에 성공했다. 내년에는 자율주행용 IR센서까지 개발해 낸다는 포부다.
위기를 넘긴 트루윈은 다시금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2015년 본점 소재지를 이전한 후 2016년 SQ인증(전기조립), 2018년에는 ㈜시리우스를 흡수합병하고 그해 12월 고용노동부의 청년친화강소기업에, 지난해에는 강소기업에 연거푸 선정됐다.
#. 유니콘 기업을 향한
오랜 기간 센서라는 한 분야에 집중해 온 트루윈에게는 ‘장인기업’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린다. 여기에는 남 대표 특유의 철학과 달관 적인 삶의 자세가 배인 것처럼 보인다.
“직원들에게 한 우물을 열심히 파라고 말합니다. 인생은 짧아서 여러 우물을 팔 시간이 없습니다. 팠는데 거기서 물이 나오면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이고 죽을 때까지 팠는데 물이 안 나오는 것은 결국 무덤자리만 되겠죠. 물이 나온 사람과 안 나온 사람의 차이가 없어요. 이름을 남기고 주변사람한테 공헌하고 죽느냐. 자기 혼자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냐의 차이일 겁니다.”
사회에 대한 기여, 전문 분야에 대한 연구, 남 대표는 노벨상 이야기를 언급한다. 한국에서 노벨상이 나오지 않는 한 원인이 한 우물을 파지 못 하게 만드는 환경에 있는 것 같다며 짙은 아쉬움을 덧댔다. 남 대표는 국내 환경에 대해 뼈있게 지적하며 좀 더 자유롭고 전문화한 연구를 할 수 있는 중소기업 직장인들 중에서 노벨상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말했다.
“일본은 작업복을 입고 있는 회사원들 중에서 노벨상 받은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우리 중소기업에서도 노벨상이 먼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가능성 있는 이야기를 하면 들여다봐줄 수 있는 사회 풍토가 필요하겠죠.”
그가 트르윈의 목표에 대해 힘줘 말했다. 트루윈을 ‘유니콘 기업’으로 우뚝 서게 만들겠다는 당찬 포부 말이다. 이를 통해 많은 과실도 얻고, 직원들도 좀 더 편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것이라는 꿈을 키운다.
“일본, 독일의 유니콘 기업이라 평가받는 회사 직원들은 우리나라 출장 올 때 은 비즈니스석을 타고 옵니다. 회사 룰이 그런 것인데 자연스레 회사에 대한 프라이드가 생길 것 같지 않나요? 우리도 유니콘 기업이 돼 그러했으면 합니다. 눈이 높아지면 (그렇게) 멀리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젊은 세대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20~40대는 아직 후반전도 시작하지 않았으니 성장이 늦는 것을 두려워말고 좋은 멘토를 찾아 배우라는 당부였다. 자신의 말대로라면 막 후반전이 시작된 그 역시, 더 멋진 인생 골을 넣기 위해 달려 나가고 있다.
“제가 인생을 축구경기에 많이 비유합니다. 25세 때부터 전반전이 시작돼 50세면 전반전이 끝납니다. 55세부터 80세까지 후반전을 뜁니다. 전·후반에 승부가 안나면 연장전과 승부차기로 100살까지 갑니다. 인생을 살면서 천천히 성장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전략을 잘 세웠으면 합니다. 그러려면 훌륭한 멘토를 찾아내야 합니다. 부디 직접 찾아가 배우는 것을 게을리 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